정치권, 블록체인 본격 수용하나...토큰증권 법제화와 가상자산법 추가 논의 활발
김재섭 의원, 토큰증권·가상자산법 세미나 개최
한동훈 대표 "토큰증권이라는 새로운 '그릇' 필요"
시장에서는 "가상자산법은 반쪽짜리 입법" 지적
"블록체인 산업 규제보다 진흥에 초점 맞춰야"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준호 기자] 22대 국회가 가상자산을 비롯한 블록체인 산업의 제도권 편입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달 토큰증권 법제화를 위한 법안이 여야 양측에서 연달아 발의된 데 이어 이달 열린 관련 간담회에는 집권여당 대표가 직접 참석했다. 지난주에는 가상자산산업 혁신을 위한 2차 입법과제 논의 세미나도 개최됐다. 그간 투기성만 부각돼 규제의 대상으로 몰렸던 블록체인 업계가 차츰 숨통을 틀 수 있을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지난 28일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이 개최한 'STO(토큰증권발행) 포럼 조찬 간담회'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토큰증권은 이제 현실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토큰증권을 '허용하느냐 마느냐' 하는 찬반의 문제를 논할 시기는 지났다"며 ”정치가 할 일은 제도 내에서 불공정 거래나 이용자의 불편 그리고 이용자가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게 철저히 준비하고 거기에 걸맞은 제도를 늦지 않게 내놓는 것“이라며 법제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미국과 싱가포르는 이미 STO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으며, 일본도 금융상품거래법 개정으로 STO를 제도권으로 편입시켰다"며 "제도권 내에서 불공정거래나 이용자의 불편을 없애고, 철저히 준비해서 늦지 않게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토큰증권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부동산, 미술품, 음원 등 실물자산을 토큰 형태로 발행해 조각 투자할 수 있게 하는 금융 서비스다. 현재 증권사와 조각투자사들은 토큰증권 인프라 정비 등 사업 가동을 위한 준비 태세에 돌입한 상태다.
이날 한 대표는 토큰증권이 다양한 음식을 특성에 맞게 담을 수 있는 새로운 그릇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봤다.
한 대표는 “대한민국은 제조업 강국이다. 반도체나 자동차, 조선, 스마트폰 등 이런 음식들이 많다는 것 자체는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이다”며 “하지만 만든 음식을 잘 팔고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그릇이 필요하다. 어떤 것이 (STO 발전을 위해) 좋은 방안이고 어떤 제도를 만들어야 할지 논의해보자”고 했다.
이는 지난해 2월 금융위가 “STO 허용은 새로운 그릇을 만들어, 음식 특성에 잘 맞는 그릇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내용과 같다. 여기서 '음식'은 자본시장법상 증권, '그릇'은 증권의 발행형태를 의미한다.
발행형태가 달라진다고 증권이라는 본질이 변하지는 않으며, 아무 것이나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쓸 수 없듯 일정한 법적 효력과 요건을 갖춘 발행형태가 요구돼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위는 "비정형적인 증권을 소액 발행하는 경우에는 증권사를 통해 중앙집중적으로 전자등록·관리되는 기존 전자 증권이 부적합하다. 새로운 발행형태가 필요하다"며 "따라서 토큰 증권의 발행‧유통을 허용함으로써 새로 출현한 다양한 권리의 증권화를 지원하고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해 기존 증권의 발행과 거래도 더욱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개선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김재섭 의원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토큰증권 관련 법안(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한 상태다. 둘은 지난 9월 '토큰 증권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주제로 국회에서 공동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전자증권법 개정으로 전자증권 발행에 분산원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토큰증권 발행 법적 근거 마련)과 발행인 계좌관리기관 등록제를 신설하는 것(요건 갖춘 발행인의 직접 토큰증권 발행·관리)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투자계약증권·수익증권의 장외거래중개업자를 신설하는 것(비정형적 증권 유통플랫폼 형성)이다.
즉 비정형증권에 대한 토큰증권의 발행과 유통, 분산원장의 정의와 규율의 근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토큰증권 플랫폼을 구축·준비 중인 증권사나 은행 등 금융권은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김재섭 의원은 간담회에서 "한동훈 대표가 말씀하신대로 STO는 더 이상 찬반, 여야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민주당에서도 이미 관련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22대에는 STO와 관련한 법적 준비가 완료되도록 정무위에서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앞줄 왼쪽 세번째)가 2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디지털자산 STO 포럼 조찬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며 파이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같은 날 국회에서는 토큰증권 간담회 외에도 '가상자산 산업 및 블록체인 혁신을 위한 2차 입법 과제' 세미나도 열렸다. 역시 김재섭 의원을 중심으로 블록체인법학회, 한국경영학회, 서강대 BK21 경영 교육 연구단이 공동 주최했다.
세미나에서는 지난 7월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산업 진흥이 아닌 규제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들이 이어졌다. 이용자보호와 시장 건전성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이제는 규제보다는 진흥에 초점을 맞춘 2차 입법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한동훈 대표는 서면 축사에서 "불공정거래행위 규제를 넘어 가상자산 거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추가 연구와 가상자산산업, 블록체인 산업의 안정적인 발전과 진흥을 모색해야 할 때"라며 "당이 정부와 보조를 맞춰 경쟁력 있는 가상자산사업자가 국내 시장에서 온전히 자리를 잡고, 가상자산시장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윤한홍 국회 정무위원장은 "가상자산법에서는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산업의 육성과 활용에 대한 제도적 논의는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가상자산과 블록체인에 대한 다음 단계의 입법적, 제도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가상자산업 2차 입법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발표한 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현 가상자산법이 결국 당국과 시장 참여자가 다 만족 못하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과 특금법 개정으로 가상자산사업자의 자금세탁방지와 이용자 보호를 위한 엄격한 의무를 부과했지만 가상자산과 토큰화 현상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하다"며 "그럼에도 정부는 아직 이용자보호가 부족하고 스테이블코인, 선물, 옵션 거래 등 새로운 서비스 확대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대로 업계와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술, 산업이 낙후된 것은 억제적인 법, 규제와 그림자 규제로 인한 것이니 개선해달라고 주장한다"며 "기업의 크립토 산업 진출 저조와 이용자의 다양한 서비스, 상품선택권 제한에 불만을 갖는 것"이라고 짚었다.
박종백 변호사는 "그동안의 IT 중심지, 초고속인터넷도입 주도, 인공지능(AI) 선도국 비전과 가상자산 관련한 비전을 달리 볼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미국이 인터넷기술과 산업을 주도하고, 규제도 주도한 것을 따라한 경험과는 반대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정엽 블록체인법학회장은 가상자산법이 '반쪽 입법'이며, 블록체인 생태계의 발전을 위한 법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조만간 모든 자산이 토큰화돼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저비용으로 인터넷에서 거래될 것"이라며 "그 자산에 대한 시장이 건설돼 네트워크 효과를 구축하고 나면 다른 경쟁자들이 그 시장을 대체하기란 요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근 서강대 BK21 경영학 교육 연구단장은 "블록체인 기술은 이제 실물 자산의 토큰화를 통해 전통 금융시장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며 "골드만삭스는 2030년까지 실물 자산의 토큰화 시장 규모가 16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JP모건, BNY멜론과 같은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이미 디지털 자산 커스터디 서비스를 출시하며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하루 거래액 22조 원 규모의 거대 시장이 제도권 밖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금융 산업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상당한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이제는 이 거대한 시장을 제도권으로 편입시키고, 건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선제적이고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출처 : 오피니언뉴스(http://www.opini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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