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때보다 더 힘들어진 혁신…AI·블록체인 다 놓쳤다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이 30일 서울 종로구 뉴스1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4.12.30/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경기 성남시 한글과컴퓨터 본사. 2022.10.20/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인천 그랜드 하얏트에서 열린 업비트 개발자 콘퍼런스(UDC) 2019 참관객들이 행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두나무 제공) 2019.9.4/뉴스1 ⓒ News1 송화연 기자
여수국가산업단지 야경.(여수시 제공)/뉴스1 ⓒ News1 지정운 기자
"벤처 열풍 이후 찬스가 한 번 더 있었는데 그게 블록체인이었어요. '김치프리미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의 코인 비즈니스는 글로벌을 압도했습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지원은 커녕 불법으로 규정하고 틀어막았죠. 결국 국내 블록체인 산업은 물 건너갔습니다. 지금 AI 산업 역시 응용만 하고 있을 뿐 기반이 되는 데이터는 끌고 가지도 못합니다."
(서울=뉴스1) 대담=강은성 성장산업부장 이정후 이동해 기자 =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은 우리나라 혁신 산업이 몇 번의 기회를 놓치며 성장 동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우리나라 주력 산업인 자동차·철강·화학 등은 기후위기 등 환경 변화 속에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경제 상황은 전 이사장이 보기에 1997년 IMF 당시와 비슷하다. 기존의 전통 산업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을 신산업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2000년대 전후로 있었던 벤처 열풍 당시 우리나라 혁신 산업의 중심에 있었던 전하진 이사장을 만나 혁신 산업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부도 위기 한글과컴퓨터…인터넷 사업으로 재기
전 이사장은 1998년 7월 한글과컴퓨터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벤처 1세대' 인물이다.
전 이사장이 취임하기 직전 한글과컴퓨터는 IMF 직후 경영 악화로 '아래아 한글'의 신규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민적 지지를 받은 '아래아 한글 살리기 운동본부'가 만들어지면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계약은 없던 일이 됐고, 당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을 창업한 전 이사장이 구원투수로 한글과컴퓨터를 이끌게 됐다.
위기의 한글과컴퓨터 대표를 맡은 그는 사업의 눈을 '인터넷'으로 옮겼다. 정부의 IT 육성 정책과 함께 전국에서 PC방이 생겨나고 채팅 서비스가 부흥하던 때였다.
전 이사장은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한글과컴퓨터가 인터넷을 연계한 신사업을 추진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해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70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구글독스'의 초기버전과도 같은 온라인 오피스 프로그램 '넷피스'도 이같은 시각에서 전 이사장이 적극 개발했다. 비록 한글과컴퓨터의 인터넷 기반 사업은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후배 IT 기업들의 본보기가 됐다.
전 이사장은 "당시 IT라는 생소한 분야에 정부가 투자하면서 우리나라에 인터넷이 깔리기 시작했다"며 "그 후 버블이 꺼지긴 했으나 뒤따라오던 기업들이 지금의 네이버, 넥슨, 카카오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제2의 기회였던 블록체인…정부 외면 속에 놓쳤다
벤처 열풍의 중심에 있던 전 이사장은 인터넷 이후 블록체인이라는 흐름이 또 있었지만 우리나라가 이를 놓쳤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글로벌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제가 2018년에 블록체인자율규제위원장을 할 때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블록체인 콘퍼런스를 갔는데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었어요. 우리나라의 글로벌 역량에 너무 놀랐죠. 그런데 정부가 도움은 커녕 훼방을 놨어요. 법무부 장관, 금융위원장이 나서서 블록체인을 불법으로 규정했죠. 결국 그렇게 블록체인 주도권을 놓쳤죠."
전 이사장은 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외면받은 산업이 사실은 우리 사회에 혁신을 가져오는 산업이 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는 국민들에게 생소했던 인터넷 산업이 정부의 의지로 성장하는 것을 체감한 직접 경험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전 이사장은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미 주도권을 놓친 블록체인과 AI 등에서 기회를 찾기보다 '파괴적 혁신'을 통해 나올 수 있는 신산업을 찾는 게 국가 발전에 훨씬 효과적일 수 있어서다.
"정부가 계획을 세울 때 '무슨 산업을 키워야 하지?'라고 고민한다면 아주 새로운 걸 찾아서 밀어줘야 합니다. 파괴적인 새로운 것, 그게 기후테크입니다."
다음 혁신의 흐름은 기후테크…우리나라는 최적의 테스트 베드
전 이사장은 기후테크 산업이야말로 향후 우리나라가 글로벌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기후위기는 전 세계적 문제일뿐더러 해결해야 하는 명확한 목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산업으로 보자면 성장 가능성과 지향점이 명확한 셈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후테크를 육성하기에도 적절하다. 주력 산업인 자동차·철강·화학·조선 등은 탄소 배출이 많은 대표적인 '고탄소 산업'이기에 기후테크 기업들이 날개를 펼 수 있는 최적의 '테스트 베드'라는 이야기다.
IMF 때와는 다르게 정부의 역할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민간 기업이 자유롭게 사업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직 기후테크에는 기회가 많습니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 15년 만에 우리 일상이 모두 바뀌었잖아요. 기후테크도 똑같습니다. 몇 년 뒤에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게 당연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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